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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주전함 야마토의 아이러니

출처 : KISTI의 과학향기 (http://scentkisti.tistory.com/320)
글 : 유병용 /<과학으로 만드는 배> 저자  

온라인 게임의 대명사인 스타크래프트에는 배틀크루저라는 유닛이 있다. 이 베틀크루저는 자체의 공격력과 방어력만으로도 스타크래프트 최강 유닛 중 하나로 꼽히지만 야마토라는 일종의 함포를 쏠 때 더욱 막강해 진다. 아직 확인은 못했지만 일본어처럼 들리는 야마토라는 이름은 아마도 2차 세계대전 무렵에 활동하다 바닷속으로 가라앉은 유명한 전함 야마토에서 유래한 듯 싶다. 그런데 이 ‘야마토’라는 이름은 스타크래프트에 사용되기 이전에 일본 애니메이션으로 먼저 부활했었다. 필자가 어렸을 때 좋아하던 TV만화시리즈 중에 ‘우주전함 V호’라는 만화가 있었는데 나중에 알고 보니 이것의 원제가 바로 ‘우주전함 야마토’라는 일본 애니매이션이었다. 내가 좋아하는 우주전함 V호’가 우리 작품이 아니고 일본 애니메이션이었던 것도 슬프지만 더욱 씁쓸한 소식은 이 만화가 일본의 군국주의를 찬양하는 지극히 우익보수적인 애니매이션으로 평가받고 있다는 사실이었다.

그런 사실도 모르던 철부지 시절의 나는 ‘우주전함 V호’에 푹 빠져있었고 틈만 나면 낙서를 하면서 공책 곳곳에 우주전함 야마토를 그렸었다. 우주전함 야마토를 그릴 때면 놓치지 않고 배 앞부분의 아래쪽을 볼록 튀어 나오게 그렸었는데 당시의 나는 세상의 모든 배가 앞부분이 볼록 튀어나온 돔을 달고 있는 줄로만 믿고 있었다. 하지만, 내가 대학에 와서 조선공학을 공부하고 나서야 이 돔의 비밀을 배웠고, 더 나아가 우주전함 야마토에는 이 돔이 필요 없지 않을까라고 혼자 생각해보게 되었다.



이 볼록 튀어나온 부분을 조선공학에서는 구상선수라고 부른다. 결론부터 말하면 배에 달린 구상선수는 단순히 멋을 위해서가 아니고 배가 움직이면서 생기는 파도를 줄여서 배가 앞으로 쉽게 나가도록 하기 위해 설치되었다.

여름철 뜨거운 해수욕장에서 안전 요원들이 고속보트를 타고 쏜살같이 달리는 시원한 모습을 생각해 보자. 보기만 해도 시원하지만 이 보트가 한번 지나가면 주위에서 수영하던 사람들은 난리가 난다. 보트가 만든 파도 때문에 물은 출렁거리고 사람들은 뒤집히거나 물살에 휩싸이고... 뭐. 그냥 재미있는 광경이려니 하고 웃고 넘어갈 수도 있지만 이 파도의 정체가 무엇인지 한번 생각해보자.


이 파도는 보트가 앞으로 나아가면서 만든 파도이다. 하다못해 신데렐라의 멋진 마차를 만들기 위해서도 썩은 호박과 말로 변신할 쥐가 필요하듯이 이 세상에 공짜는 전혀 없다. 물리적으로 설명하면 에너지 보존의 법칙이 적용되는 것이다. 공짜가 없는 이 세상에서 보트가 지나가면서 파도가 생겼다는 사실은 보트를 앞으로 나아가게 하기 위한 에너지의 일부가 파도를 만드는 데 사용된 것이라 할 수 있다. 결과적으로 배를 앞으로 움직이기 위한 에너지의 일부가 손실되었기 때문에 그만큼 배가 앞으로 전진하려는 성질이 작아진 것이다. 그렇다면 배가 만드는 파도를 작게 만들 수 있다면 배가 쉽게 나아갈 수 있지 않을까? 이런 개념으로 연구를 시작해 배에 설치한 게 구상선수이다.



파도에서 위로 높이 올라온 부분은 파정이라 부르고 바닥에 있는 부분은 파저라고 부르며 이 파정과 파저의 높이차를 파고라 한다. 결국, 큰 파도라는 것은 파고가 높은 파도를 말하며 파에 의한 에너지도 이 파고가 클수록 커진다. 조선공학자들은 파정과 파저의 형태는 배의 형태로 조절할 수 있다는 생각을 갖고 실험을 계속하면서 재미있는 결과를 관찰하였다. 일반적으로 우리가 배의 전형적인 형상이라고 부르는 쐐기모양의 배 모형을 끌고 가면 배 앞부분(선수)에서 파고를 만드는 파의 형태가 생기는 것을 관찰할 수 있었다. 이와는 반대로 물속에 완전히 잠겨있는 구를 움직여 보았더니 구의 바로 뒤에는 파저를 만드는 파의 형태가 생기는 것을 관찰할 수 있었다.



그렇다면 이 두 물체를 합쳐서 배의 앞부분에 구를 달면 어떻게 될까? 배의 형태는 앞부분에서 파고를 만들려 하고 물속에 잠긴 구는 파저를 만들려고 하기 때문에 두 개의 파가 서로 상쇄되어 그 크기를 줄일 수 있지 않을까? 이러한 개념과 보다 정밀한 실험을 통해서 나온 것이 구상선수를 갖춘 배이다. 즉, 구상선수는 배가 만드는 파도의 크기를 줄여줌으로써 조파저항을 줄여주는 역할을 한다. 물론 모든 배가 구상선수를 달고 있는 것은 아니다. 구상선수를 달면 그만큼 배 앞부분의 부피가 커져 오히려 성능이 떨어질 수 있기 때문에 구상선수를 달지 않는 배도 많이 있다. 오늘날에는 배의 특성에 맞는 다양한 디자인의 구상선수가 존재하고 있으며 일반적으로는 덩치가 크고 빠르게 움직이는 배가 파도를 많이 만들기 때문에 보다 크고 앞으로 많이 튀어나온 구상선수를 달고 있다.

그렇다면 과연 우
주전함 야마토에도 구상선수가 필요한지 다시 생각해 보자. 우주전함이 때에 따라서는 바다 위에서 항해할 수도 있겠지만, 내 기억에 우주전함 야마토는 파도가 없는 우주 속을 계속 떠돌아 다녔다. 파도 없는 우주를 항해하는 우주전함에 조파저항을 감소시킬 수 있는 구상선수를 굳이 설치한 것은 우주전함에 있어서는 아이러니가 아닐까? 하긴 구상선수처럼 멋스러운 곡선이 없는 우주전함 야마토의 모습은 나도 상상조차 하기 싫으니, 이제 와서 구상선수를 제거해 달라고 부탁하고 싶은 마음은 절대 없다. 적어도 멋스럽지 않은가. (글 – 유병용 /<과학으로 만드는 배> 저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