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브래지어가 방독면이 된다면? 이그노벨상 2009


출처:http://scentkisti.tistory.com/entry/브래지어가-방독면이-된다면-이그노벨상-2009
글 : 박태진 동아사이언스 기자
 
 
“브래지어 마스크와 함께라면 언제, 어디서나, 어떤 순간이나 위기 대처 능력을 갖춘거나 마찬가지입니다. 사실상 거의 모든 여성이 브래지어를 착용하니까요.”

브래지어로 긴급한 상황을 막을 수 있다니 무슨 이야기일까? 올해의 ‘이그노벨상’ 공중보건 분야의 수상자인 엘레나 보드너 박사에게 그 답이 있다. 우크라이나 출신 과학자인 그녀는 라파엘 리, 샌드라 매리전 씨와 함께 위급 상황에서 접으면 방독면 역할을 할 수 있는 브래지어를 개발했다.
 



이 브래지어는 여성들이 평소에 착용하다가 화재 등으로 유독가스가 발생할 때 사용할 수 있다. 브래지어 한쪽을 떼어 입과 코를 막고 브래지어 끈으로 고정하면 위기상황을 모면할 수 있는데, 브래지어 컵부분 패드가 필터 역할을 할 수 있기 때문이다. 나머지 한쪽은 남자친구나 옆 사람에게 줄 수 있어 다른 사람을 구할 수도 있다.

보드너 박사는 1986년 체르노빌 원전 폭발사고에서 마스크가 부족해 많은 사람들이 방사성 요오드(Iodine-131) 중독 현상을 겪는 것을 계기로 이런 아이디어를 떠올렸다고 설명했다. 긴급한 상황을 대비해 속옷을 이용한다는 재미있는 발상. 이렇듯 새로운 과학적 발견은 ‘그것 참 재미있네’라는 말로 시작된다.
 

결국 과학도 ‘재미’에 근원이 있다. 흔히 어렵고 딱딱할 것이라고 생각하기 쉬운 과학으로도 세상을 한껏 웃길 수도 있다. 세상을 즐겁게 만든 연구자에게는 마땅히 보상이 있어야 하지 않을까. ‘다시 할 수도 없고 해서도 안 되는 업적에 주는 상’, 이그노벨상은 바로 이들을 위해 준비된 상일지도 모른다.

이그노벨상은 미국의 유머 과학잡지인 ‘애널스 오프 임프로버블 리서치(AIR, Annals of Improbable Reaseach)’가 매년 9월 말에서 10월 초에 노벨상 발표에 앞서 수상한다. 1991년부터 시작돼 올해로 열아홉번째 시상식을 맞았다. 브래지어 방독면 외에도 ‘데킬라 다이아몬드’ ‘빈 맥주병이 흉기로는 더 치명적’이라는 연구결과와 ‘임신한 여성이 넘어지지 않는 이유’ 등 기상천외한 수상작이 선정됐다.

물리학상은 임신부의 배가 불룩하게 불러와도 넘어지지 않는 이유를 추적해 ‘여성의 척추가 남성이나 다른 포유동물보다 더 유연한 구조를 가지고 있다’는 연구결과를 발표한 캐서린 위트컴 미국 신시네티대 교수진에게 돌아갔다.

네 발로 걷는 포유류는 배가 불러와도 무게중심이 변하지 않지만 인간처럼 두발로 걷는 경우는 다르다. 태아의 무게 때문에 골반 위에 있던 무게 중심이 앞으로 쏠리기 때문이다. 이 때 여성은 허리를 뒤로 젖혀 무게중심을 잡게 된다. 휘트컴 박사는 무게중심을 잡을 수 있는 원리가 여성의 요추에 있다는 사실을 알아냈다.

여성의 요추는 남성보다 한 개 더 많은데, 이 세 개의 요추는 쐐기 모양으로 결합돼 있다. 쐐기 모양의 결합은 요추를 활처럼 앞뒤로 구부러질 수 있게 하고, 이 때문에 상체를 쉽게 척추 뒤로 젖힐 수 있다는 것이다.

이 덕분에 여성은 무게중심을 쉽게 잡을 수 있고 출산 후 아기를 팔로 안을 때도 남성보다 더 안정된 자세를 유지할 수 있다. 휘트컴 박사는 “여성의 척추 구조는 인간이 바로 서면서 진화한 것”이라고 설명했다. 이 연구 결과는 2007년 네이처에 발표됐다.

<올 이그노벨상 ‘브래지어 방독면’ 2009년 이그노벨상 공중보건 부문 수상
자인 옐레나 보드나르 박사(왼쪽 두번째)가 미국 하버드대에서 열린 시상식
에서 수상작인 ‘브라 방독면’ 착용 시범을 보였다. 사진출처. 이그노벨상
공식홈페이지>
<올 이그노벨상 ‘브래지어 방독면’ 2009년 이그노벨상 공중보건 부문 수상
자인 옐레나 보드나르 박사(왼쪽 두번째)가 미국 하버드대에서 열린 시상식
에서 수상작인 ‘브라 방독면’ 착용 시범을 보였다. 사진출처. 이그노벨상
공식홈페이지>

평화상에는 ‘빈 맥주병이 흉기로서는 더 치명적’이라는 연구결과를 발표한 스테판 볼리거 스위스 베른대 법의학장이 선정됐다. 그는 빈 맥주병이 사람의 두개골에 더 심한 치명상을 입힌다는 사실을 2009년 범죄수사 및 법의학지 4월호에 발표했다. 이들은 철제 공과 맥주병을 실험도구로 사용했고, 사람의 머리를 대상으로 실험한 적은 결코 없다고 밝혔다.

화학상에는 멕시코 전통술인 데킬라에서 뽑아낸 원료로 다이아몬드 필름을 성장시킬 수 있다는 사실을 연구한 자비에 모랄레스, 미구엘 아파티카, 빅터 카스타노 교수 등 멕시코 국립자치대 교수진이 선정됐다. 수학상은 살인적인 인플레이션을 방치해 실제 가치는 1센트인 액면가 100조달러짜리 지폐를 발행한 짐바브웨 중앙은행에게 돌아갔다.

생물학상에는 자이언트 팬더의 얼굴에서 추출한 미생물을 이용해 음식물 쓰레기를 10%까지 줄일 수 있는 방법을 알아낸 일본 사가미하라 기타사토대 다구치 후미아키와 송 고우푸, 장 구앙레이 박사팀이 선정됐다. 또 수의학상은 ‘이름이 있는 젖소는 그렇지 않은 소보다 더 많은 우유를 생산한다’는 것을 입증한 연구팀이 차지했다.

이외에도 문학상에는 속도 위반 상습범에게 50여차례나 법칙금 고지서를 발부한 아일랜드 경찰이 선정됐다. 범인은 폴란드어로 ‘운전면허’라는 프라보 야르시(Prawo Jarzy)라는 이름을 가졌다.

이렇게 2009년 이그노벨상 수상작은 사람들에게 웃음을 선사했다. 재미만큼 의미 있는 연구도 있어 ‘네이처’ 등 유명 연구 저널에도 실렸다. 혹시 아직도 과학은 진지하고 근엄할 것 같다는 편견을 가졌다면 이그노벨상 결과를 보고 다시 생각해보는 것은 어떨까.

움베르트 에코가 소설 ‘장미의 이름’에 쓴 것처럼 진리는 사람들을 웃게 만드는 것일 수도 있다. 재미있는 연구, 그래서 인류를 사랑하는 사람들을 만날 수 있는 자리가 바로 이그노벨상 시상식장이 아닐까. 사람들이 웃을 수 있는 세상을 만드는 과학자와 그 연구가 기대된다. 그래서 내년 이그노벨상이 또 기다려진다.

글 : 박태진 동아사이언스 기자
 
ndsl링크 <출처 : 한국과학기술정보연구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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